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니치 드래곤즈 (문단 편집) === 한국인 선수와의 인연 === ||[youtube(mHgoUN3sQXg)][* 99년 세리그 우승 당시 [[선동열]], [[이종범]], [[이상훈(좌완투수)|이상훈]]에게 헌정된 한국 삼총사ver. 타올라라 드래곤즈. 초반에 라인업이 소개된 후, 다른 노래와 달리 세 선수의 모습을 묘사하는 가사가 등장한다.]|| 1996년 [[선동열]]이 입단한 뒤로 지속적으로 한국인 선수들과 인연을 맺어왔다. 선동열은 1년의 적응기간을 거치긴 했지만 [[다카쓰 신고]], [[사사키 카즈히로]]와 맞먹는 리그 정상급 [[마무리 투수]]로 활약하며 말년을 불태웠고, 그의 뒤를 따라 [[해태 타이거즈]] 후배 [[이종범]]과 [[LG 트윈스]]의 좌완 에이스 야생마 [[이상훈(좌완투수)|이상훈]]도 주니치에서 함께 뛰게 되었다. 일본프로야구의 [[외국인 선수]] 1군 출전제한이 4명인 것을 감안할 때 꽤 파격적인 선택이었고, [[선동열]]을 제외하면 사실 완전히 기대에 부응한 것만은 아니었지만, 그래도 성적이 훌륭하다까진 아니어도 나쁘지 않은 정도였고 1999년 [[반테린 돔 나고야|나고야 돔]]으로 옮긴 뒤 첫 리그 우승을 하는 등 당시 팀 성적과 분위기가 꽤 좋았기에 한국 삼총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사랑받았다. ||[[파일:a0114992_49ac178fd97ed.jpg]] 이적 첫 해 일본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누리는 이병규.[* 구단으로서는 53년만의 우승이었고, 본인도 프로 커리어 첫 우승이었다. --그리고 크보에서는 우승을 못 했다--]|| 2007년부터 2009년까지 [[이병규(1974)|이병규]] 선수가 소속했다. 그러나 주니치 역대 최고의 외야수 중 하나였던 [[후쿠도메 고스케]]의 포지션을 차지한데다가, 고액을 받는 외국인 선수 치고는 성적이 신통치 않아 언론과 팬들에게 자주 까였다. 그래도 그럴 때마다 [[뜬금포]]를 날려대는 통에 참 대놓고 까기는 뭐한 미묘한 상태였다. 그래도 2007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나름 공헌하는 활약을 했고 선수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며 일부 팬들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기도. 그러나 2009년에는 완전히 말아먹었고, 본인은 주니치와 재계약을 원한다고 했으나 결국 팀은 시즌 종료 후 재계약을 요청하지 않으며 [[LG 트윈스]]로 돌아오게 되었다.[* [[이병규(1974)|이병규]] 선수 본인도 한국 복귀시 '방출당한 게 아니라 그냥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 뿐이다.'라고 웃으면서 얘기했다고.] 여담으로 [[라뱅쓰리런]] 드립 역시 주니치 시절에 생긴 것이다.(...) 한국 고교야구 선수인 [[송상훈(야구)|송상훈]]이 2012년 일본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 팀에 6순위로 지명되어, 한국 고교야구에서 드래프트로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. 그러나 입단 1년만에 [[육성선수]]로 신분이 바뀌었으며 2014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. 이후 한국 선수와의 인연은 끊어진 상황. 다만 요다 츠요시 감독이 2019시즌 종료 후 '과거 주니치는 한국 선수들이 도왔다'면서 한국야구에서 새 전력을 찾아보겠다고 언급. 11월에 개최될 프리미어12에서 한국을 시찰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. 뒤이어 주니치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[[이종범]]이 주니치에 2군 코치연수를 가게 되면서 인연이 다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.[*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, 주니치는 현재 12개 구단 중 모기업이 가장 빈약한 구단 중 하나다. 지방신문과 지상파 방송, 라디오, 인쇄업 등 인터넷으로 인해 점점 쪼그라드는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서 재정적으로 빈약한 편이라 메이저리그에서 우수한 용병을 데려올 돈은 없고, 한국이나 대만 팜 등에서 가성비 용병을 찾아봐야 하는 처지인 것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